칠보시
그런데 <조자건집>에서 이 시들을 찾아보니, ‘소’에 관한 시는 없고 ‘콩과 콩깍지’에 관한 시만 “일곱 걸음에 지은 시”(七步詩)라고 해서 수록되어 있다.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불태우고, 메주를 걸러 즙을 만든다.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에서 타고,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네.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 너무도 급한가(煮豆燃豆萁, 漉豉以爲汁,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222-3쪽). 그런데 이 시에 달린 역주를 보니, “실제로 조식이 이 시를 지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일단 <세설신어>에 의거하여 실어놓고 후일의 새로운 연구를 기다린다”고 나와 있다. 다시 말해 이 시는 원래 <조자건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지만, 역자가 임의로 <세설신어>에서 가져다가 여기 수록해 놓았다는 뜻이다.
김장환 교수의 완역본 <세설신어>의 해당 항목(4-066/0247)을 찾아보았더니, 여기에는 원문이 약간 다르게 (煮豆持作羹, 漉菽以爲汁, 萁在釜下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나와 있고, 역주에도 “여러 책에 인용되어 있는데 각각 字句의 출입이 다소 있”(335쪽)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문선>에는 4행시(萁在竈下然,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로, <초학기(初學記)>에는 4행시(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로, <몽구>에는 6행시(煮豆持作羹, 漉豉以爲汁, 萁在釜底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로, <태평광기>에는 6행시(煮豆持作羹, 漉豉取作汁, 萁在釜下然, 豆向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로, <태평어람>에는 4행시(萁在竈下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편의상 일곱 가지를 나란히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여타 버전과 다른 한자가 사용된 경우에는 파란색으로 표시했고, 그 버전에만 있는 한자는 빨간색으로 표기했다).
(1) 煮豆燃豆萁, 漉豉以爲汁,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조자건집)
(2) 煮豆持作羹, 漉菽以爲汁, 萁在釜下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세설신어, 5세기)
(3) 萁在竈下然,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문선, 6세기)
(4)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초학기, 8세기)
(5) 煮豆持作羹, 漉豉以爲汁, 萁在釜底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몽구, 8세기)
(6) 煮豆持作羹, 漉豉取作汁, 萁在釜下然, 豆向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태평광기, 10세기)
(7) 萁在竈下然, 豆在釜中泣,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태평어람, 10세기)
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칠보시’의 6행 버전과 4행 버전은 대동소이한 내용이며, 후자는 별도의 시행이 들어갔다기보다는 단지 전자의 처음 3행 가운데 2행을 누락시킨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또 우리말 번역본 <조자건집>에서 <세설신어>의 원문을 수록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1)과 (2)가 다른 까닭은 아마도 각각의 역자가 참고한 판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칠보시’를 6행시가 아닌 4행시로 소개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마도 <연의>에 수록된 시가 4행시 버전이었던 까닭으로 보인다.(내가 갖고 있는 <연의> 두 가지, 즉 범우사 판과 청년사 판에도 역시 4행시로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시는 6행시로 소개해야 맞을 것이다. 애초에 이 시를 기록한 <세설신어>에 그렇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七步詩 (일곱 걸음에 지은 시)
- 조식(曹植, 192~232) -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 콩 삶아서 국 만들고
漉豉以爲汁 (녹시이위즙) 메주 걸러서 장 만든다.
萁向釜下然 (기향부하연) 콩깍지는 솥 아래에서 타고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콩은 솥 안에서 흐느낀다.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上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서로 지지는 것이 어찌 그리 급한가
너무도 유명한 고사이다.
동서양 고대사를 보면 공통점이 매우 많다. 특히 궁중 비사(秘事), 권력 암투, 황제나 왕들의 애정 행각, 온갖 박해를 딛고 승리한 자가 펼치는 처절한 복수 등의 스토리는 아주 흡사하다. 한마디로 왕조의 역사는 권력투쟁에 승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 권력 투쟁 때문에 국력이 고갈되어 급작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황제, 왕,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운명은 선악(善惡)과 생사(生死)를 같이 한다. 승리한 자는 바로 선(善)이요 삶을 뜻하고, 패한 자는 악(惡)이요 죽음을 뜻한다.
어쨌거나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런 뛰어난 시를 지어낸 조식이야말로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의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또 그렇게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조비 대신 조식이 황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문학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권모술수, 모략, 눈치, 암투 같은 것들과 문학이 어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조조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지만, 자식이 단명(短命)한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악행을 많이 한 모양이다. 큰아들 조앙은 전쟁터에서 잃고, 둘째 조비와 셋째 조식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마흔 한 살에 세상을 떴으니, 아버지 대(代)에서 저지른 업보를 그 아들 대에서 받은 듯하다.
*조식(曹植, 192~232)은 중국 삼국시대(220~280) 위(魏)나라 시인으로 위나라 무제(武帝) 조조(曹操, 155~220, 재위216~220)의 아들이다. 조조는 재기가 넘치는 조식을 사랑했지만, 절도가 없다는 점에서 실망하여 217년 둘째아들인 조비(曹丕, 186~226, 재위 220~226)를 후계자로 정했다. 맏아들 조앙(曹昻, ? ~197)은 일찍 전쟁터에서 죽었다.
조비가 위나라 황제로 즉위한 이래 조식은 늘 감시를 받고, 유폐생활을 하는 등 불우하게 지내다가 41세에 죽었다. 이 시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의하면 조조의 뒤를 이은 문제(文帝) 조비가 동생 조식을 일곱 걸음 안에 시를 지어내지 못하면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형제간의 갈등을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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